생물학

생물학 분야의 출현

낙타쓰 2019. 12. 15. 22:53

19세기까지 생물학은 형태와 기능(즉, 생리학)에 대한 문제를 연구한 의학과 생물과 생물, 생물과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 및 생물의 다양성에 관해 연구한 박물학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었다. 박물학이 세포생물학, 세균학, 형태학, 발생학, 지리학, 지질학과 같은 보다 전문화된 과학 분야들에 크게 영향을 주었지만 1900년까지 이들 학문 영역의 대부분은 서로 중첩되어 있었다. 19세기 초, 중반에 박물학자들의 광범위한 탐험을 통해 생물의 다양성과 분포에 대한 풍부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자연철학(즉, 물리학 및 화학)의 정량적 접근법을 사용하여 생물과 환경(즉, 박물학의 영역)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연구가 특히 중요하다. 훔볼트의 연구로 인해 생물지리학의 기초가 마련되었고, 여러 세대의 과학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신흥 학문인 지질학은 박물학과 자연철학을 더욱더 가깝게 만들었다. 주상단면도는 생물의 공간적 분포를 시간적 분포와 관련시킴으로써 진화라는 개념이 성립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살아있는 포유류와 화석을 상세하게 비교한 일련의 강의와 논문을 통해서 퀴비에는 널리 믿어져 온 바와 같이 화석이 현존하는 생물의 잔해가 아니라 이미 멸종한 생물의 잔해라는 것을 확증했다. 조르주 퀴비에를 비롯한 여러 학자에 의해 1790년대 말부터 19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비교해부학과 고생물학은 큰 발전을 이루었다. 기들 온 멘델, 윌리엄 버클랜드, 메리 이닝, 리처드 오언 등에 의해 발견되고 기술된 화석들은 '포유류의 시대' 이전에 '파충류의 시대'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발견은 대중의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고, 생명의 역사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다윈 이전에 가장 중요한 진화론은 장바티스트 라마르크의 이론이었다. 대부분 지질학자는 격변설(천변지이설)을 지지하였지만, 찰스 라이엘은 그의 영향력 있는 저서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 (1830) 늘 통해 과거 지질 시대의 지각 변화는 현재와 똑같은 과정과 속도로 일어났다는 제임스 허턴의 동일과정설을 대중화시켰다. 라마르크의 이론은 획득형질이 유전된다(20세기까지 널리 받아들여진 유전 메커니즘)는 것으로 이를 열등한 미생물에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진화 과정을 묘사했다. 영국의 박물학자 찰스 다윈은 훔볼트의 생물지리학적 접근,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에 근거한 지리학,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과 자신의 형태학적 전문성을 결합하여 자연선택설에 기초한 보다 발전적인 진화론을 만들었다.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도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드캉돌, 훔볼트, 다윈의 연구에 이어 윌리스는 동물지리학에 큰 공헌을 하였다. 말레이 군도에 머무르는 동안 월리스는 아시아와 뉴기니/호주 사이의 군도의 동물군을 구분 짓는 말루쿠 제도를 통과하는 월리스 선을 확인했다. 비슷한 기후를 가진 섬들의 동물군이 왜 그렇게 달라야 하는지에 대한 월리스의 핵심 질문은 각 생물의 기원을 고려함으로써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돌연변이설에 관한 관심 때문에 월리스는 남아메리카에 이은 말레이 제도에서의 야외 연구를 수행하면서 유사한 종간의 지리적 분포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월리스는 1876년에 《동물의 지리적 분포》(The Geographical Distribution of Animals)를 출판하였고, 1880년에 속편으로 섬 생물지리학에 초점을 맞춘 《도서 생물》(Island Life)을 출판했다. 월리스는 조류의 지리적 분포를 설명하기 위해 필립 스클레이터가 제안한 6구역 체계를 모든 종류의 동물에게 확장 적용했다. 지리적 영역에서 동물 집단에 대한 데이터를 도표화 하는 월리스의 방법은 불연속성을 강조했고, 이러한 인식들로 인해 그 전에 행해지지 않은 진화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 있었다. 생물을 기계론적으로 이해하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유전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프랜시스 골턴과 생물통계학자들의 연구로 빠르게 성장했다. 19세기에 걸쳐 생리학의 범위는 의료 분야뿐만 아니라 사람, 식물, 동물 심지어 미생물까지 포함한 생물의 물리적, 화학적 과정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에 이르기까지 크게 확장되었다. 유전학의 기원은 훗날 유전법칙을 만든 것으로 인정받는 오스트리아의 성직자 그래 고어 멘델의 1865년의 논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멘델의 연구는 35년이 지나도록 중요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동안 범행설(pan genesis, 다윈의 유전 가설), 정향진화설(orthogenesis) 또는 다른 메커니즘에 기초한 다양한 유전 이론들이 토론되고, 활발하게 연구되었다. 특히 진화와 관련이 있고, 에른스트 헤켈의 연구 때문에 대중화된 발생학 및 생태학도 또한 생물학의 중심적인 분야가 되었다. 그러나 19세기의 유전에 관한 연구의 대부분은 박물학의 영역이 아니라 실험적인 생리학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19세기 말에 이르자 대부분 과학자는 진화와 공통 조상에 대해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주된 유전 이론과 무작위적 변이의 유전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자연선택은 20세기에 들어와서까지 진화의 주요 메커니즘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을 출판한 것은 현대 생물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이전의 진화에 대한 출간 물보다 《종의 기원》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로 박물학자로서 다윈의 확고한 신뢰성, 책에서의 차분한 논조, 제시된 증거의 뚜렷한 강조 및 적절한 분량 등을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