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의 역사
생물학(biology)이라는 단어는 "생명"을 뜻하는 그리스어 "βίος (BIOS)"와 "학문"을 뜻하는 접미사 "-logy"의 결합으로 형성되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생물학이란 용어는 토머스 베도스 (1799년), 칼 프리드리히 부르다흐 (1800년), 고트프리드 라인홀트 트레비라 뉴스 (1802년), 장바티스트 라마르크 (1802년)에 의해 각각 독자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생물학이란 단어 자체는 1766년에 출판된 독일의 학자 미카엘 크리스토프 하노 우의 저서 《Philosophize naturalism Siva physical dogmaticae: Geologic, biologic, phytologia generals ET dendrologia》 제3권의 제목에 등장한다. 예를 들어 중국 도교의 연단술 전통은 건강에 중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궁극적인 목표는 불로장생의 영약임) 생물학 일부로 간주할 수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생물학적 주제가 약용식물학자, 의사, 연금술사와 철학자의 연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분산되어 있었다. 고대 중국의 의학 체계는 일반적으로 음양오행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또한, 기원전 4세기 장자와 같은 도교 철학자들은 생물 종의 고정을 부정하고, 생물 종이 환경에 대응해서 특성을 발전시킨다고 추측하는 등의 진화와 관련된 생각들을 표현하였다. 생물학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전에 동물과 식물의 연구에서 사용된 몇 가지 용어가 있다. 박물학은 생물학에 관해 기술하는 측면이 있었지만, 광물학 및 기타 미생물학적인 분야도 포함하였다. 중세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박물학의 통일된 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의 단계(Scala natural), 즉 존재의 대사설이었다. 자연철학과 자연신학은 식물과 동물에 대한 개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근거를 포함하고, 생물이 존재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지만, 지질학, 물리학, 화학 및 천문학을 포함하고 있다. 생리학 및 (식물학적) 약리학은 의학의 한 분야였다. 식물학, 동물학 및 지질학(화석의 경우)은 생물학이 널리 받아들여지기 전인 18세기, 19세기에 박물학과 자연철학을 대체했다. 고대 인류는 생존의 기회를 높이기 위해 식물과 동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오늘날 식물학과 동물학은 균류학 및 분자생물학과 같은 생물학의 다른 하위 분야라는 의미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는 인간과 동물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과 동물 행동(이주 패턴과 같은)의 측면을 포함할 수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 지식의 첫 번째 중대한 전환점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00년 전에 일어난 신석기 혁명에 있었다. 인류는 처음에는 농사를 위해 식물을 길들였고, 그다음 가축을 길들였고, 그 결과 정착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가장 오래된 의학 체계 중 하나는 기원전 약 1,500년 전 아타르바베다(인도의 지식, 지혜 및 문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4권의 책 중 하나)에서 유래한 인도의 아유르베다로 알려졌다. 기원전 16세기부터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외과 안내서)와 에버스 파피루스(각종 질병 치료를 위한 의료 재료 준비, 사용에 대한 안내서) 같은 12종이 넘는 의학 관련 파피루스가 전해진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의학은 기원전 11세기의 저명한 학자인 예사길-킨-아플 리로 대표될 수 있으며, 그는 의학적 처방전과 절차들을 편찬하여 퇴마의식으로 제시했다. 또한,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의 유해를 보존하고 부패를 막는 시체방부처리 기술을 발달시킨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미라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고대 인도의 아유르베다는 고대 그리스 의학의 4가지 체액과 유사한 3가지 체액 개념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켰고, 인체는 5가지 요소와 7가지 기본 조직으로 구성된다는 더욱 복잡한 체계를 포함한다. 또한, 아유르베다의 저자들은 태어나는 방법(자궁, 알, 열과 습기, 씨앗)에 따라 생물을 4가지 범주로 분류하고, 태아의 개념을 자세히 설명했다. 또한, 그들은 사람 해부나 동물 해부 없이 수술 분야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가장 초기의 아유르베다 문헌 중 하나는 기원전 6세기 수스르타의 것으로 보이는 수스르타 삼 히터(Sushruta Samhita)로 700종의 약용 식물, 64종의 광물 원료, 57종의 동물성 원료를 기술한 초기 약물학 문헌이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중국의 고대 문명은 독자적이고 복잡한 자연철학 체계를 가졌으며 수스루타(인도) 및 장중 경(중국)과 같은 유명한 의사와 학자들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현대 생물학의 근원은 고대 그리스 철학의 세속적인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생명에 관해 많은 질문을 던졌지만, 생물학적 관심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거의 만들지 못했다. 그래도 순수 물질적인 용어로 생명체를 설명하려는 원호론자들의 시도는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는 식물학에 관한 일련의 책인 《식물의 역사》를 저술했는데 이 책은 식물학에 대해 고대에 가장 중요한 이바지를 하였으며, 중세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의 의학이론, 특히 사체액설은 후대에 지속해서 영향을 미쳤다. 18세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와 거의 모든 서구학자는 생물체가 식물에서 사람까지 올라가는 완전한 단계로 배열되어 있다고(자연의 단계 또는 존재의 대사설) 믿었다. 열매와 관련된 "카포스(carpus)", 열매껍질과 관련된 "페리 카피 온(pericarpion)" 같은 테오프라스토스가 명명한 많은 용어가 현재까지 남아있다. 디오스코리데스는 약 600여 종의 식물에 대한 설명과 의학에서의 사용법을 종합하여 선구적이고 백과사전적인 약학 서적인 《약물학》(De Gateria Medici)을 저술했다. 대 플리니우스는 그의 저작 《박물지》(Natural History)에서 많은 식물과 동물들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여 자연에 대한 백과 사전식 설명 들을 후세에 남겼다.